이명박 후보를 선택한 것은 국민의 수준 문제다.

  5년 전 우리 국민들은 한나라당을 처벌하기 위해 노무현 후보를 선택했다. 그리고 5년 후인 지금은 범여권이라 불리는 현 정부 세력을 처벌하기 위해 한나라당을 선택했다. 그것으로 단죄는 이루어졌으며 그 단죄가 곧 우리의 현명한 선택일 수 있는 것일까.



5년전에 더 나쁜 놈과 덜 나쁜 놈이 있었다.
지금도 그러하듯이 5년 전에도 그랬다. 허물 없는 사람이 어디있으랴. 노무현 정부의 5년 임기 초중반이 모두 그런식이었다. '노무현의 허물보다는 한나라당의 허물이 훨씬 크다', '둘 다 나쁘지만 더 나쁜 쪽을 고를 수는 없잖은가'라는 것이 당시 선거의 큰 변수로 작용했던 인터넷 매체와 젊은층을 통해 꾸준히 모아진 중론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모아진 의견은 근본적인 모순이 있었고 이에 관해 눈가리고 아웅식으로 덮어놓고 있었는데, 이는 젊은층의 소원이 이른바 '단죄'와 '정의'라는 주제였고 그것을 모티브로 젊은층이 움직임을 더해갔다는 것이다.

5년 전과 지금의 우리
정의, 단죄. 더 나쁜 놈과 덜 나쁜 놈이 있다면 그들을 처벌함에 있어서 차등을 두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이는 분명 정의다. 하지만 더 나쁜놈은 처벌하고 덜 나쁜놈은 상을 준다면 어떨까. 5년전 우리의 젊은이들이 이랬다. 그리고 5년이 지난 지금, 덜 나쁜놈이 멍청하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더 나쁘지만, 일은 역시 영리한 놈에게 맡겨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해버린다. 어처구니없게도 말이다.

5년의 시간과 두 번의 선거를 통해 드러난 사실
이렇게, 긴 시간을 거치고 어려운 선택을 거듭하며 자명해진 사실이 있다면 우리 5천만 국민들이 참으로 물건 볼 줄 모른다는 사실이다. 스스로 무엇을 원하며, 그것을 얻기 위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모른다. 그리고 지금 자신이 하는 행동이 무엇인지 모른다.  게다가 일단 물건을 샀다면 설사 결함이 있더라도 자기 뱃속에 집어 넣고야 말겠다는 굳은 신념까지 있다. 결함있는 물건을 비판하기라도 할라치면 그 물건을 고른 자신의 자존심이 다칠까 무서워서 명명백백한 물건의 결함마저 결함이 아니라고 온몸을 떨며 강변하는게 우리 5천만 국민인 것 같다.

노무현 정부 중반까지 그러했고, 강변을 하다하다 지치고 원래 이상했던 물건이 더 변질 되어버리자 강변 할 실체가 남지 않아서 그만둔 게 우리였다. 그 우리가 이제 다시 앞으로 5년동안 강변할 준비를 하고 있다. 모든게 사실이 아닐거라고, 경제를 살릴게 확실하다고 말이다. 그러고보면 우리 국민은 그저 '물건 볼 줄 모르는' 경험 부족의 차원이 아니라 멍청함이라는 병증에 걸렸다고 보는게 옳으며 고치기는 커녕 병을 방치시키고, 이제는 그 병증이 마치 자신의 본성인마냥 변호까지 해대는 합병증의 지경에 이르렀다고 봐야 할게다.



정답은 드러나 있었다
1. 도덕성의 국가적 위상에 관한 역사적 컴플렉스
서류상의 증거에는 범인의 흔적이 없었지만 필름위의 기록에는 범행사실에 관한 자백이 남아있었다. 이것은 사전적 의미 그대로의 순수한 '자백'으로서, 일선 경찰서에서 용의자를 다루듯 해서 얻어낸 자백과는 격이 다른 순도를 지니는, 참된 자백인 것이다.

잠을 안 재운것도, 법을 동원해 강제로 소환한 것도, 누가 물어 본 것도, 대답하라고 요청한적도 없이 제 돈으로 밥 잘먹고 제 방에서 잠 잘 자고 자가용 타고 제 발로 와서는 제 입으로 '내가 했네' 떠벌인, 아주 순도 높은 자백인 것이다.

전, 노씨등 전직 대통령들의 수천억 비자금, 김현철씨 구속과 김홍일씨 구속, 그리고 한나라당의 차떼기와 노무현 후보의 선거자금 부정까지. 연이은 국가적 개망신이 중대사가 아니라고 치부하지 않는한 이토록 자명한 부정 앞에서 우리 국민은 왜 그래야만 했는지, 멍청함이란 병증을 근거로 하지 않고서야 논리적인 설명이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2. 문국현
문국현 후보에게도 허물이 없진 않았다. 5억원의 은닉 재산이 드러났으니 말이다. 하지만 멍청증 걸린 우리 5천만 국민들과 이 환자집단이 골라놓은 정치권의 모습과는 대조적인 리액션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곧장 문국현이라는 사람이 우리의 대표가 되어야 할 당위적 이유로 대변될 수 있다. 우선, 그는 버티지 않았다. 누구처럼 아직까지 버티는건 생각도 못한다. 은닉 사실이 드러나자 처음에는 '자녀들 결혼자금'이라고 하더니 이내 '잘못했다'며 모든 것을 인정하고 사과까지 한다.

3. 도덕성
혹시 여태껏 살면서, 정치인이란 족속이 정계를 은퇴하거나 실권하기 이전에 '사과' 또는 '반성'은 고사하고 사실에 관해 인정이나 제대로 하는 걸 본 사람이 있는가. 아, 두 아드님들이 옥에 가실적에 본 것도 같기는 한데...그거 사실 그분들이 가야 하는 일이었잖은가.

물론 이 문제를 제기한 쪽에서나 문국현 후보 쪽에서나 전략적인 심산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찌되었든 문국현 후보를 한가지 문제에 매어두고자 했던 의도는, 이를 일찍 파악하고 적절히 대응한 문국현 후보에게 비교적 쉬운 장애물에 불과한 것으로 지나갔다.

둘째로, 기업 출신의 성공적인 경영인이다. 뭐? 이명박 후보가 더 대단하다고? 뭘 모르나본데 '존경받는 기업인'과 '월급 많이 받는 기업인'이 있다면 당연히 월급 많이 받는 사람쪽으로 붙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증상이 멍청증의 가장 일반적인 증세다.

4. 경제
셋째로, 유효적절한 공약이다. 경제만 활성화 되면 다 끝이라고? 물론 그건 이명박 후보 입에서 흘러나오던 말과 똑같은 것이다. 공약이란 것은 마냥 꿈을 좇는 것도 아니고 사람들 기분만 좋게 해 주는 것도 아니다. 사회에 필요한 것을 찾아내고 실천하겠다고 공언하는 게 공약이라는 말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이 사회가 줄곧 무엇에 시달려왔는지 알아야 하지 않겠냐는 말이다. 정말 경제가 문제라서 경제가 살아나면 끝인가? 글쎄, 이나라 90%가 살기 어렵다고 하던 요즘 시기에 나머지 10%도 힘들게 살고 있던가? 그래서, 경제가 살아나면 90%가 더 잘 될지 10%가 더 잘 될지 감이 안 잡히는 것인가? 문제는 '경제'가 아니라 '양극화'다. 경제가 아무리 어려워도 잘 사는 놈은 잘 살고 경제가 아무리 호황이라도 못 사는 놈은 여전히 힘든데, 그깟 노가다 몇 탕 더 뛰자고 5년짜리 노예 계약서에 서명을 해?!

참 이상하다는 생각 안해봤는가? 경제 성장률은 좋은데 우리 생활은 왜 힘든지. 우리가 힘들때마다 뉴스에 나오는 이야기는 우리 경제가 어렵다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 경제는 안어렵단다. 주가가 왜 계속 올라가고 있는지 모르지? 아직도 저평가되어 있어서 오를 여지가 많다는게 우리 주식이란다. 우리 기업의 가치와 우리 경제의 가치가 아직도 시중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오를 것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경제성장률 또한 둔화되긴 했어도 안정화 시기에 접어든 한국 시장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꾸준한 회복과 안정세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설마 IMF이전의 그런 거품 성장률과 거품경제의 달콤함에 목말라 하고 있지만 않은 것이라면 말이다. (물론 누군가는 IMF이전이 아니라 개발독재시절의 성장 이미지를 업고 다닌다. 그런데 이런 사람을 잘났다고 뽑아놓은 국민이 태반이나 있으니 어안이 벙벙해질 따름이다)

자, 그렇다면 왜! 왜, 우리 서민은 아직도 살기가 힘들단 말인가. 우리 경제가 절망적인게 절대로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것은 문제의 핵심이 '경제'가 아닌 '생활'에 있음을 이해해야만 설명 가능한 일이 된다. 다시말해, 90%의 일반 대중이 바라는 '경제의 활성화'라는 것은 일종의 개념어로서, 기업 소득의 증대나 국가 총생산의 증대 또는 국민 총생산의 증대와는 상당부분 맥락을 달리한다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반 대중이 언급하는 '경제의 활성화'라는 것은 '생활비 저감'이라는 현실적 진실을 통해 이해해야만 하는 것이다. 공공요금, 생필품 가격, 통신요금, 식료품비, 의료비 등의 부담에서 자유롭고자 하는 것이 일반 대중의 소망인 것이다. 증권사들이 내 놓은 한국가스공사의 2008년 예상 순익이 3천억원을 상회하고 있지만 우리 사회는 오래전부터 전기나 수도는 물론이고 가스 공급이 중단되어서 한 겨울을 정말 겨울처럼 보내고 있는 일가족들을 종종 방송으로 접해왔다. 신세계, 삼성테스코와 롯데쇼핑이 연일 수익을 확대하고 있다고 해서 우리의 생필품 소비가 줄지는 않는다. 이상하게도 할인하는 물건은 많고 할인품만 골라 사는데도 소비는 맨날 똑같다. SK와 KT의 주가는 탄탄한 수익기반을 바탕으로 나날이 고공행진을 이어가지만 우리는 SK와 KT에 갖다바치느라 매달 빠짐없이 10만원 이상은 월급에서 아예 없는 돈으로 여기고 산다. 치과와 성형외과는 물론이고 한의원에 약국까지, 웰빙에다 외모지상주의를 타고 수익이 줄어들지 않는 그들이지만 우리의 의료비가 그들의 수익 확대를 위해 늘어본 적은 있어도 줄어본 적은 없다. 심지어 그들은 시위까지 한다. 학교 재단 이사장들이 학생들의 미래를 볼모로, 의사들은 환자의 생명을 볼모로 말이다.

자, 그렇기 때문에 이처럼 서민이 소망하는 경제 활성화의 본질을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서민 대중이 바라는 '경제 활성화 - 생활비 저감'을 위하여 부의 재분배, 공평분배, 경제 정의 실현이라는 가치를 내세울 수밖에 없게 된다.

이것은 돈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재화를 축적해가는지에 관해 투명성을 제고하자는 방법론이며 이들이 재화의 축적과정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부담에 관해 적절히 책임지우자는 책임론이다. 즉, 이를 통해 폭리와 착취 구조를 해체하자는 것이지 경제활동을 방해하자는 내용이 아니다. 물론 폭리와 착취가 시장경제의 본질이자 선구자의 미덕이라고 생각했던 수많은 부동산 투기자들은 이 내용을 납득할래야 할 수가 없을 것이다.

또한 경제활동에 의해 발생된 이익이 시중에서 이탈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도 부의 재분배, 공평 분배, 경제 정의 실현이라는 차원에서만 선순환을 불러 일으켜 지속적으로 가능케 할 수 있을 뿐이다. 이같은 차원의 정책를 통해 사회의 잉여자금이 사치재 소비 산업이나 유흥 산업을 통해서만 기형적으로 소모되는 것을 막을 수 있고 이렇게 축적된 자금은 다시금 서민 경제 활성화를 위해 투여될 여력을 확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것을 경제 규제책이라고 욕할 명분이나 실질적 근거는 어디에도 없으며 폭리로 자금을 만들고 불투명한 운용으로 사리사욕을 확대하려는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만 비난의 대상이 된다.

또 한편으로 돈을 왕창 벌어서는 땅만 사놓고 오르는 땅값과 임대료만으로 편하게 산다든지 은행에 묻어두고 이자만으로 놀면서 부유하게 사는게 점차 불가능하도록 하는 방법이다. 돈이 정체되지 않고 건전한 시장에서 순환되어야만, 소유한 것은 없고 이것 저것 필요한대로 임대하고 차입하며 평생을 피고용인이자 임차인이자 채무자로 살아가는 우리 생활이 편해지는 법이다. 물론 피고용인의 소득이 늘면 고용인과 서비스 제공자의 수익도 늘 수밖에 없으므로 이는 장기적으로 보았을때 모두에게 이익인 구조다. 즉, 폭리구조와 음성적 소득 구조에 관해서는 개선과 감독을 하자는 것이 부의 재분배, 공평 분배, 경제 정의 실현에 관한 공통적 내용이며 서민들이 부르짖는 '경제 활성화'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문국현 후보의 경제 공약이다.

이를 위해 그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 강화, 비정규직을 절반으로 축소, 건설비리 척결, 조세제도 개혁, 금산분리 유지 및 강화, 금융감독정책의 혁신 등의 공약을 경제분야 주요 공약으로 제시했다. 즉, 꿈같은 것도 아니고 누구 입맛에 맞추려고 만든 것도 아니고 우리가 그토록 부르짖어 마지않는 경제 활성화를 위한 기초를 언급해 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만 나오면 따라오는 이야기가 성장과 분배에 관한 백년전 구도에 관한 것이다. 더욱 우스운것은 90%의 서민들 입에서 더욱 활발하게 부의 재분배와 경제 정의 실현에 관해 부정적인 의견이 다수 표출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우리 국민의 상당수가 아직도 개발을 통한 경제적 수혜밖에는 받아본 경험이 없는 이유도 있을 것이고 또한 이것을 순전히 돈 많은 사람들 재산을 빼앗아서 돈 없는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일차적 수준의 재분배라고 생각하는 몰지각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뭐, 그것도 심각한 지경에 이르면 아무나 빨갛게 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말이다.

참, 문국현 후보의 경제 공약이 구조 개선이라는 근본에 접근해 있다면 여타 후보들의 서민 경제 지원책은 하나같이 깎아 주는 것으로 일관한다. 얼마나 쉬운가. 권한은 정부에 있으니까 정권을 잡으면 안받겠다는데. 그리고 그따위도 정책이랍시고 발표하면 그걸 또 좋다고 덥썩 덥썩 잘도 받아 문다. 정책으로 보자면 아랫돌 빼서 윗돌 괴기이고 상황으로 보자면 국민이 원숭이 역할인 조삼모사인데도 말이다. 어차피 구조가 바뀌지 않는데야 여기서 안 받으면 저기서 뚫릴테고 지금 안받으면 나중에 더받아야만 하는 것일텐데도 국민은 그저 생각없이 끄덕끄덕이다.

5. 사회
넷째로 이사람이야말로 사회통합이라는 우리 사회의 핵심적 과제에 관해 최적격이다. 그 어떤 지역, 그 어떤 이해집단, 그 어떤 기업, 그 어떤 학교, 그 어떤 종교와도 얽혀있지 않다. 혹시 이명박 찍을때 '사회통합'이라는, 그토록 정치권에서 떠들어대던, 언론에서 줄기차게 부르짖던 그 말을 떠올리지 못한 것은 아니었겠지들? 참으로, 이 사회에 살면서 어찌 어느 지역과 집단, 종교, 학교, 회사, 사람과 무관할 수 있겠는가. 무관할수는 없다. 모두 유관하지. 관건은 얽혀있느냐는 것이다. 덜미잡혀있느냐는 것이다. 당당하냐 그렇지 못하냐는 말이다. 문국현 후보는 이 사회와 무관한 사람이 아니라 이 얽히고 설킨 사회에서 정갈한 생을 살아온 사람이라는게 핵심이며, 그의 그러한 삶이야말로 사회통합의 중심축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우리의 경험을 통해 유추할 수 있는 사실인 것이다. 우리의 경험을 통해서 말이다!



멍청증
상상속에서 그려오기만 했던 대통령이었다. 소망해왔던 그 사람이었다. 그런데 막상 눈앞에 나타났더니 선택을 거부해버렸다. 그리고 늘 하던대로 했다. 그러므로 늘 살던대로 살게 될 것이다. 이것은 예언이 아니라 인과관계다.

5천만 환자집단이 바라던 단죄는 이제 완성되었는가. 한나라당이 더 잘못했으니까 열린우리당을 뽑아줘서 한나라당을 5년간 약오르게 했고 이제는 열린우리당이 잘못했으니까 한나라당을 뽑아줘서 대통합민주신당을 5년간 약올리면 되는 것인가. 그런데, 우리는 왜 우리의 중대한 미래를 담보삼아 지나간 과거사를 처벌하는 것에 대해 아무런 위기감이 없는거지?

자, BBK에 관해 국민이 이제부터 절대적으로 모르고 싶지만 않다면 조사를 해 보아야 하고 핵심 인물이 이명박 당선자라면 당연히 당선자 또는 대통령 신분으로 검찰 조사를 받아야만 할 것인데도 불구하고 후보사퇴를 하지 않은 이명박 당선자는 과연 어떤 사람이며 이를 뽑은 국민들은 대체 또 어떤 사람들일까. 8년 임기 후반에 재판에 연루된 클린턴도 힘들었고 미국은 국제적 개망신이었는데 우리는 시작전부터 이런데도 괜찮은걸까. 괜찮으려면 모른척 해야하고 알려면 안괜찮을텐데 일부러 모르려면 이 사회의 기본적인 법과 질서는 과연 어떻게 되는 것일까? 그리고 알고나면?

명분이니 도덕성이니 따위는 접어두고, 그렇게 관심 있었던 우리 생활은? 양극화 해결과 사회통합은 경상도 지역 기반의 기독교 장로로 계신 부자집단 대표를 통해 가능해 질 것인가.



국민의 수준 문제
자, 그래서 인과적으로 이것은 국민의 의식수준 문제에 귀결된다. 뭐 그리 인쇄소 밥줄 걱정이 많이 된다고 선거 공보물에다가 일가 재산이며 본인은 물론 자녀들 병역 사실이며 범죄사실까지 공표토록 법으로 정했을까. 그래도, 그래도 좋다는데는 취향이거나 고집이거나 병이다.

문국현 후보를 고르지 못한 것은 그래, 낯설어서 그렇다고 치자. 말도 안되지만 그렇다고 치자. 그럼 정동영 후보나 권영길 후보가 있지 않은가. 둘 다 그런대로 괜찮은 공약까지 갖추고 있었고 한 사람은 매일밤 아홉시면 얼굴 비추던 사람이니 낯설거 없어 좋고 또 한 사람은 4년마다 나오는 사람인데다 유행어까지 있으니만큼 익숙하지 않은가. 뭐, 그래도 둘 다 색깔이니 뭐니 해서 싫고 죽어도 스스로를 보수니 어쩌니라고 생각한다면 이회창 후보도 있지 않았냐는 말이다.

국민은 장님이 아닌게 분명하다. 장님이라해도 자백하는 목소리는 들리니까. 귀머거리도 아니다. 자막은 보이니까. 그럼 뭘까. 다 보고 다 들었어도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는 근거는...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물건 볼 줄 모르는 국민이 결함 많은 물건을 비싼값 들여서 사 와서는 주변의 우려와 비판에도 아랑곳 않고, 스스로도 그 결함에 대해 잘 알면서도 애써 변명과 옹호를 더해가다가 결국에는 그 결함 덩어리를 소중한 우리의 뱃속에다 처넣고는, 당연히 심각한 탈이 나고나면 이 놀라운 국민들은 또, 결함있는 물건을 탓하면 탓했지 못난 제 자신을 탓하고 반성할줄은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늘 하던대로 했으니까 늘 살던대로 살게 될 것이고 이것은 인과관계에 의한 것이라서 오차가 없으리라.





- 낯선이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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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낯선이름 | 2007/12/25 01:24 | ☞ 에세이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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