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8월 27일
우리를 향한 우리의 시선이 우리를 절망 속에 가둔다
개혁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혁명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혁명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개혁이 가능하다는 것은 그 사회의 수준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것은 구제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 능동적 변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바로미터다.
그런데 혁명은 무엇인가. 더 이상 참고 견디는 것이 불가능할때 터져나오는 비명과 같은 것이다. 이것은 사회라는 유기체의 말초적 반사행동과도 같은 것이다.
개혁은 그릇의 쓰임을 바꾸는 것이고 혁명은 그릇을 바꾸는 것이다. 하지만..
똑같은 그릇에서의 주도권 쟁탈전은 결코 그 그릇의 쓰임을 바꾸지 못한다. 주도권 쟁탈전의 양상이 '쓸 권한의 획득'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쓰임이란 이미 그 그릇 자체가 되어 있어서, 혹은 그 사회의 인식이 그 이외의 활용을 허용하지 않고 있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만들어진다.
때문에 새로운 세력이 그 주도권을 획득했다 할지라도 대중의 인식마저 깨뜨려야 하는 상황 앞에 무력해지게 된다. 그러다보면 우리는 흔히, 대중 앞에 소수의 개혁파가 정면으로 맞서다가 저희들 무리 내에서조차 왕따를 당하게 되든지, 구태와 똑같은 것을 새로운 것이라며 잘 포장해서 대중의 눈밖에 나지 않도록 하는 기술자들이 넘쳐나게 되거나, '점진적 개혁'이라는 수구 논리에 귀착되면서, 희망이란 것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인류의 삶에 교훈을 주는 광경을 진저리 나도록 목격하게 된다.
권력을 만드는 세가지 원소
그래서 결론은 이렇다. 그릇은 필요하다. 그러나 그 그릇을 정의하는 것은 하나의 힘이 아니다. 그릇, 그릇을 주도적으로 쓸 권한, 그리고 그 그릇을 바라보는 시선이 하나의 그릇을 정의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세 가지를 모두 변화시켜야 개혁이든 혁명이든 이루었다고 평가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인식을 바탕으로 우리 유권자들은 선택을 해야한다. 이제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낀다면 저 세가지를 바꿀 수 있는 '주체'를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외계의 그릇, 외계의 기술, 외계의 시선만이 실질적 해법
하지만 어렵다. '대한민국 정치권' 혹은 '대한민국의 권력'이란 그릇은, 마치 블랙홀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 어떤 거대한 변화의 패러다임조차도, 우리가 애써 그것을 선택(물론 그런 적도 없지만)한다 하여도, 한낱 그릇의 용적 속으로 손쉽게 빨려 들어가 버리고 마니까. 그래서 대중들의 외계인을 바라는 마음은, 역사적이며 선험적 깨달음일뿐만 아니라 논리적으로도 결함이 없는 바람이다. 그러니까 우리의 현실엔 '도래인' 같은 존재가 필요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 낯선이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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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 2009/08/27 11:37 | ☞ 에세이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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