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5월 29일
언론탓, 시위탓 하지마라. 문제의 본질은 쇠고기 협상이지 PD수첩이 아니다.
쇠고기 협상을 이후로 국민은 목소리를 모으고 행동에 나서기 시작했으며 정부는 연일 보완책이라며 공식 발표를 이어가는 동시에 집회 참여자를 연행하고 주동자를 잡아들이려고 하는 등 대립이 격화되고만 있다.
성향을 보는 바른 눈
사회적으로 이런 혼돈의 과정이 거듭될 때 흔히 발생하는 시각차가 각 개인의 성향, 즉 보수적이냐 또는 진보적이냐를 가늠하게 되는 것 같다. 단, 이런 성향을 두고서 보수적인 사람을 '우파'라 부르고 진보적인 사람에게 '좌파'라 부르는 것은 현재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보면 어불성설이다. 그저 사태를 바라보는 시각차라는 것이 존재하고 그것에 관해
'어떤 경우라 하더라도 정해진 법을 지키면서 일단 사회적 혼란 자체는 확대시키지 말아야 한다.'
는 쪽이 보수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의 시각이며
'어떤 어려움을 겪더라도 잘못된 것은 반드시 바로잡아야만 한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진보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의 시각이라고 볼 수 있을 따름이다.
물론 이렇게 크게 구별되는 시각 말고도 다양한 소수 의견과 개인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흐름'을 만들어 내는 것은 소수 의견이 아니라 다수 의견이므로 우리가 사회를 이야기할때 소수를 빠뜨려서도 안되겠지만 다수 의견을 보다 잘 이해해야만 할 것이다.
사태를 보는 바른 눈
- 진보적 국민과 보수적 국민
서두에 언급했듯이 쇠고기 협상을 기점으로 하여 대한민국 사회는 거대한 혼란에 휩싸였다. 그러다 보니 협상 자체의 문제와 더불어 혼란이라는 문제까지 이 사회가 떠 안게 되는 현실이 발생하였다. 때문에 생업에 바쁘거나 나름대로 여유있는 삶을 사는 시민들 사이에서는 가중되는 혼란 자체에 거부감을 갖게 되는 현상도 발생하게 되는데, 이때의 시각이 바로 '보수적 성향'일 것이다.
반면 현재 사회적 혼돈을 생성해내고 있는 것은 국민들이지만 애초에 정부는 국민 상당수가 납득할만한 협상 결과를 가져오지도 못했으며, 부차적으로나마 정직한 대답을 원했던 국민들에게 대답은 커녕 무성의한 답변과 협상 내용에 대한 몰이해만 노출시키면서 정부를 향한 국민의 불신을 확산시켰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여론 무마와 시위 진압에만 전력을 다하고 있는 정부의 무능과 파렴치를 근본적으로 바꾸어야만 한다고 보는 시각이 바로 '진보적 성향'일 것이다.
그래서 결국 혼돈의 시작은 '국민 대 정부'의 대립 구도였지만 혼돈의 진행인 지금에 이르러서는 '진보적 국민 대 보수적 국민 대 정부'의 대립 구도를 갖추게 되었다.
- 보수적 국민은 누구인가
보수적 국민들의 생각은 이러하다. 일단 이들은 그저 자기 삶에만 충실했던 사람들이다. 말하자면 성실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불평과 불만을 내세우기 보다는 나름의 해결책을 찾으면서 지금의 자리에까지 오른 사람일 것이며 그 가족이고 친구일 것이다. 그래서 이들의 삶에는 정의나 부정이란 가치 보다 도전과 극복이라는 개인적 과제의 흔적이 더 많다.
그래서 이들은 정부와 한통속으로 불리는 것에 대해 강한 불만이 있다. 그들은 여지껏 정부에 대해 직접적으로 대항하지만 않았을뿐이지, 남들 없는데서는 정부 욕도 많이 하고 불만도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지금 '혼란만은 줄이자'라는 의견을 표출하면 사람들이 자꾸 생각이 없느니 말이 되냐느니 하면서 타박을 하기 때문에 화가 난다.
정부가 어떻고 사회가 어떠하든 자기만 잘하면 될것을, 꼭 자기 할 일도 제대로 못하던 것들이 무슨 건수만 생기만 밖으로 나와서 소리나 꽥꽥 질러댄다고 생각하는 그들에게 있어서 국민들의 표출되는 목소리는 소음이고 시위는 폭력집단으로 보일뿐인게 당연하다.
하지만 그것은 옳지 않다. 그것은 마치 수업 시간에 교실 전체가 떠들고 난리를 쳐도 자기 자신만 공부를 열심히 하면 좋은 성적을 낼 수 있고 나름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다는 발상과 같다. 이 생각은 얼마나 잘못되었는가. 확실히 그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열심히 하고자 하는 개인의 열의를 칭찬하지 않을 수는 없으리라. 하지만 수업시간마다 놀이터가 되는 이 교실에 과연 어떤 선생님이 오려고 할 것이며 어떤 새로운 학생이 들어오려고 할 것인가.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따위 교실에는 얼씬도 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즉, 미래가 없는 교실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열심히 하는 당신만이 행복해질 교실이 왜 존재해야만 한다는 말인가. 아, 물론 당신이 언제 자신을 위해 존재해달라고 바란적도 없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더더욱 보수적인 국민은 열심이 된다. 그렇게 당신은 이 교실의 구성원으로서 배움만 쏙 빼서 가져가고 이 교실의 발전을 위해서는 그저 가만히 숨쉬는 것밖에 하지 못하는 존재로 남으려고만 한다. 이런 개인적인 선택도 이기적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어처구니가 없고 황당하기까지 한 것은, 그런 자신의 방식이 마치 사회적 문제의 해결책인양 착각을 하고 있다가 남들이 모두 힘들어져서 정신이 없을때 무슨 사회적 지도자인양, 뭔가 선각자인양 점잖게 의견을 내놓는 것이다. 이럴때 보수적이지 않은 국민들은 정부에게서 느꼈던 배신감을 두배쯤은 더 느끼게 되는 것이다.
보수적인 당신의 귀에는 잡담도 소음이요 조용히 하라는 외침도 소음일뿐인 것이다.
- 진보적 국민은 누구인가
지금 행동하고 있다면, 바로 당신이 진보적인 국민이다. 그렇다면 국민 대다수가 진보적 의견에 동의한다고 한들, 그 대다수가 현재 시위 현장으로 달려가고 있는 것은 아니니까 국민 대다수가 진보적이라고 보는 것은 확실히 성급한 판단이 될 것이다.
그렇다. 우리 국민 대다수는 사실 역사적으로 볼때 상당히 보수적이다. 그런데 주의할만한 특징이 하나 있다. 사회에 아주 위급한 상황이 닥쳐올수록 우리 국민의 성향이 '진보적'으로 된다는 것이다. 사태가 위중할수록 우리 국민의 성향은 행동 지향적이 되고 뭉쳐서 더욱 강해지는 특징이 있다. 즉, 우리나라의 진보적 성향 국민들에게 '좌파'란 이름을 붙이기 어려운게 이때문이다. 이들 대다수는 사실 굉장히 보수적이기까지 한 삶을 살다가 너무 위급해져서 '불이야~'를 외치며 밖으로 뛰쳐나온 사람들인 것이다.
보수적인 사람들이 우려하는 바, 이들 중에는 분명히 급박한 상황을 이용해서 무언가 선동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가까운 10년 내의 상황을 보면, 꾸준히 이런 사람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는 항상 선동가들의 실패로 돌아갔다. 왜냐하면 혼란의 초기에 발생하는 이들의 유입 현상은 숙련된 시위와 집회의 기술이 모임에 기여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질서를 제공하는 선한 역할을 한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선동가들이 초조해지는 것은, 이들이 항상 바라마지 않는 '사회의 전복'을 집회에 참여하는 그 누구도 바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의 숙련된 시위 주도에 홀린듯 따라다니던 국민들마저 횟수가 거듭될수록 선동가들의 '똘끼' 충만하고 도에 넘치는 행동에 거부감을 느끼고 비판적으로 돌아서 버리기 때문이다.
아마도 보릿고개가 있고, 아니 인터넷이 활성화 되기 전까지만 해도, 아니 인터넷 활성화 초기까지만 하더라도 이 선동가들의 꿈은 이미 세계를 지배했을 것이고 보수적 국민들의 우려는 전국을 위기감으로 몰아가기에 충분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그저 괜한 꿈에 불과할뿐이다.
삼성 그룹의 이사진이었던 김용철씨의 삶처럼 보수적인 삶이 또 어디 있었을까만, 그가 위급할때 한 선택만큼 진보적인 결정도 없었다. 우리나라 시민단체들이 십수년간 노력했던 것을 단 한방에 해결해 낸 것은 다름아닌 그의 진보적 행동 때문이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를 '좌파'라 부를 수 있을까. 그를 진보적 성향의 사람이라고 한정 지을 수 있을까?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 재직중인 김이태 박사가 최근 '대운하'와 관련하여 외부를 향해 양심선언을 한 것도 얼마나 진보적인 결정인가. 하지만 공기업이나 산하기관에 들어가기 위한, 그리고 그 내부에서 하는 일처럼 보수적인 일이 또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그곳에 입사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공부벌레' 그 이상으로 여기지도 않는다. 서울대 경제학부 이준구 교수가 정부의 대운하 계획에 관련하여 정치-경제적 시각에 걸쳐 포괄적인 반대 의견을 대외적으로 표명했다. 정부가 자신에게 정책 타당성 검토를 의뢰한 것도 아닌데다, 그것도 반대 의견을, 정부를 향한것도 아니고 대다수 국민들을 향하여 표명했다는 점에서 특별히 고무적이다.
이처럼 우리 사회는 항상 그렇지는 않아도, 아니 항상 그렇지는 않았어도 위기에 직면해서는 자기 안위를 버리고 행동에 나서는 사람들이 있었으며 지금에 와서는 그런 사람들을 무조건 배신자로 몰아가는 시각도 점차 비판에 직면해 변화를 요구받고 있는 상태다. 특히 이런 현상은 우리 사회가 어느 정도의 의식 수준을 가지고 있는지 보여주는 표본이 되기도 한다. 무지몽매하게도 누가 이렇다 하면 사실 관계도 살펴볼 줄 모른채 덜컥 겁부터 집어먹고는 우루루 몰려다니던 시절은 분명히 흘러가고 있음이 위의 사례를 통해서도 강하게 감지된다. 이러한 대다수의 국민은 보수적 국민들의 우려나 선동가들의 몽상처럼 그렇게 쉽게 획책되지 않는다. 때문에 현재의 사태 전부를 '좌파의 선동'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저 한심한 매도에 불과할뿐이다. 또한 이 전 국가적 그리고 국민적 사태를 그저 '불법 시위'라고 떠들어대는 것은 국가적 사태를 시위라는 국소적 개념에 한정 시키려는 정부의 소심한 미봉책이자 언론의 한심하고도 저열한 수작에 다름 아니다.
무엇이 잘못 되었고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현재 보수적 국민이 사태를 보는 시각은 위에서 언급한대로이다. 즉, 보수적 국민은 이 문제의 핵심을 시위와 진압이 교차되고 있는 '사회적 혼란'으로 인식하고 있다. 분명히 이 혼란이 초래된 이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수적인 국민이 이 사태에 귀를 기울이게 된 것도 그리고 이 사태에 염증을 느끼게 된 것도 모두 시위와 집회가 계기였으므로, 보수적인 국민은 시위나 집회 이후 시점부터를 비판과 관심의 핵심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 사태의 본질은 'PD 수첩'이 아니다
때문에 보수적 국민의 관심사는 시위가 불법인지 아닌지, 언론의 보도가 사실인지 아닌지에 국한된다. 물론 '쇠고기 협상'이라는 본질적 문제에도 관심을 갖기는 한다. 그런데 여기에 참으로 위중한 문제가 있다. 보수적 국민이 갖고 있는 '사실'에 대한 관심이란게 상식 이하로 의존적이다. 딱 잘라 말해서 '미국인이 먹는 것이면 안전한 것'이라는 한국전쟁 시절의 심리적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보수적 국민들의 쟁점은 항상 미국인이 먹느냐 마느냐에 매달리고 있으며 언론사가 그것을 정확히 보도했느냐 마느냐에 한정되고 있다. 하지만 정작 그런 내용을 보도한 언론사들 조차도 그것은 '쇠고기 협상'의 잘못된 점을 설명하기 위한 하나의 보조 소재로써 차용한 일부 내용이었을뿐이지 정작 핵심 쟁점으로 다루지는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보수적 국민들은 언론이 일부 소재로 쓴 내용이라 하더라도 사람들이 이런 내용에 눈길을 빼앗기고 또한 반응하는 모습으로부터 큰 심리적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때문에 이런 내용과 이것에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에게 비판적 시각을 견지하게 되는것이다. 그러나 이런 시각 자체가 문제를 갖는다기 보다는 이런 시각의 수준에 문제 인식이 머물러 버린다는게 문제이며 모든 사태를 딱, 이 수준에서 해석하고 해법을 제시하려는 태도가 문제인 것이다. 이것은 사태의 본질이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 '쇠고기 협상'이라는 사태의 본질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 그리고 여당을 비롯한 무지몽매한 사람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분노의 대상은 'PD수첩'일 것이다. 그리고 보수적인 국민에게 있어서 이 사회적 혼란의 핵심은 잘못된 언론 보도와 그에 반응하는 국민들 그리고 불법적으로 변질된 시위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우리 국민에게 직면한 가장 커다란 문제는 CEO출신 대통령의 저렴한 경제 논리에 의해 하찮게 넘어가 버린 '주권'이다. '주권'이 넘어가버렸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안전에 관해 논할때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지 못한채 '미국인이 먹느냐 마느냐'를 놓고 왈가왈부하게 되는 지리멸렬한 사태를 맞고 있는 것이다. 특히나 그 주권을 다른 사람도 아닌 대통령이 외국을 향해 들어 바쳤기 때문에 부끄러움은 둘째치고 참으로 황당하면 한탄스러울 뿐인 현실에 있는 것이다.
'미국인이 먹는다 = 안전'이란 주장은 논리도 과학도 장치도 아니다. 때문에 이것은 쟁점사항 자체가 될 수 없다. 설사 그 주장이 명명백백한 사실일지라 하더라도, 우리가 미국산 소를 수입 할 때에는 우리 나름의 검역체계와 기준에 부합해야만 허용 할 수 있을 것이며 만약 미국인에게 안전하다 할지라도 우리 국민이 수입을 바라지 않거나 우리 국민에게 위협되는 요소가 발견된다면 우리는 당연히 우리에게 주어진 '주권'을 행사하여 합리적이자 합법적으로 수입을 거부 할 수 있어야 함이 당연하다.
그렇다면 '미국인이 먹는다 = 안전'이란 주장은 대체 무엇일까.그것은 심리다. 한국 전쟁때 쓰레기통 뒤져서 부대찌개를 끓여먹던 심리인 것이다. 미군이 먹던거니까 이걸 먹으면 최소한 덩치도 커지고 힘도 세지고 영양가도 많겠지라고 생각하던 시절, 황폐한 전후국의 국민들 심리였던 것이다. 이것은 결코 2008년 대한민국의 쟁점 사항일 수 없다. 설마 세계 최강국이니까 모든 것이 우리보다 나을 것이고 우리보다 나은 검역체계를 통해 우리보다 나은 시민사회에 살고있는 사람들도 먹는 것이니까 우리도 못 먹을 것은 없으리라고 생각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 근본을 바로잡아야 문제가 해결된다.
자, 본질이 이러하다면 보수적인 사람들이 뭐라건 정부가 어떤 여론 무마성 발언과 대책을 내놓건 시위가 어떻게 저질화되건 간에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 제일 중요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해결 할 수 있을까.
어떤 일이건 사태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잘못되었을 때 그 근본에서부터 바로잡지 않는 이상, 항상 뒤틀린채 흘러가기 마련이고 일단 뒤틀려 버린 다음에는 누구의 잘못이냐 책임이냐를 따질 수 없는 양상을 띠면서 악화되는 특성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유일한 해결책이 있다면 그 사태 자체를 바로잡는 것 뿐이다. 그것은 아무리 큰 사회적 비용이 지불되더라도 반드시 해야만 할 일이다. 전,노씨의 쿠데타와 양민 학살 그리고 반세기가 넘게 지나버린 친일파 문제도 우리는 '근본'에서부터 접근하려고 한다. 그것은 아무리 어렵고 불가능해 보이더라도 그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지혜라는 것이 있다면 사태가 점점 악화되어 나중에는 그 본질조차 흐려질때까지 방치 할 것이 아니라, 문제가 문제로서 확인되는 순간 재빨리 그 근본을 고치려는 노력부터 해야 할 뿐인 것이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근본을 바로잡지 않은채로, 그 때문에 촉발된 사후의 일에 관해 시위가 불법이다, 진압이 과잉이다, 대책이 불충분하다, 언론이 잘못이다, 선동이다 아니다를 따져 묻는 것은 모두가! 모두가, 잘못된 본질은 방치한 채 혼돈의 확산에만 기여하고 있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본질은 쇠고기 협상이다. 협상에 잘못된 것이 있다면 그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야 한다.
상식도 없이 욕심만 가득한 정부, 자기만 편하면 된다는 국민
- 국민이 목숨을 걸고, 기업이 차를 팔아서, 국가에 들어온 돈은, 누구의 공적으로 대한민국 역사에 기록될까
얼마전부터 미국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과 버락 오바마 대선 주자들이 '한미FTA ' 협상 내용이 미국에 절대적으로 불리하고 한국에만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며 국회 비준을 가로막고 나섰다. 웬일로 우리가 국제 협상에서 역사에 길이 남을 성과를 올린 것일까. 정확한 내막이야 캠프데이비드에 도청장치를 달아 놓지 않은 다음에야 지금으로선 알기 힘들다. 다만 우리가 미국소 먹어주고 미국은 우리 차 팔아주는 선에서 협상이 이루어졌다는 내용이 언론을 통해 하나 둘 흘러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기억을 더듬어보건데 수출 지향적인 대한민국 산업 구조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다름아닌 미국의 '수퍼301조' 발동이 아니었던가 말이다. 그런데 아예 관세 대상에서 제외시켜주는 자유무역협상이라니 이 얼마나 구미 당기는 일이란 말인가.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돈 받고 권리를 파는 행위는 안된다고 말이다. 돈 받고 자유를 파는 행위는 안된다고 말이다. 돈을 받고 자유를 판매한 사람이 노예다. 돈 주고 자유를 구매한 사람이 주인이다. 우리의 행복 추구권은 정부가 포기한 검역 주권을 통해 자동차 대금을 받고 미국에 팔린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CEO출신 대통령의 사고를 '저렴하다'고 표현한다. 돈과 눈에 보이는 숫자면 다 된다는 식의 천민자본주의와 당장 문제만 안되고 후다닥 넘어가기만 하면 일단 공적은 자기 것으로 기록될 것이며 시간이 흐른뒤에는 잘못을 찾아내기도 어려울뿐더러 찾아낸다 하더라도 처벌이 어렵고 애매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재빨리 저질러서 일단 챙길것부터 챙기고 보자는 이기주의로 가득찬 인물. 물론 우리 역사에는 이보다 더한 사람도 있었긴 했다. 하지만 또 다시 그런 이들이 국가의 정권에 손을 대게 해서는 안된다는게 내 생각이다.
- 보수적인 국민은 보수적으로 깨어나라
끝으로, 보수적인 국민이 쓸모 없다는 말은 아니다. 단, 지금의 사태에 대해 인식 자체에 오류가 있는 것은 국민으로서 막중한 잘못 이다. 아무리 나름대로 열심히 사느라 바쁘고 힘들었다지만 최소한 사회에 관해 무어라고 표현 할 때에는 사회적 사태에 대해 정확한 인식 정도는 준비해야 하는 것이 누구를 막론하고 상식이다.
그런데 보수적인 국민들은 사태가 심각화 되어서 시끄러워질때가 되어야 겨우 수동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시끄러우니 조용해라', '우리가 힘들게 이룩해 놓은 평화와 안정을 절대 위협하지 마라'는 식으로 반응하기 때문에 문제인 것이다. 그러니까 보수적인 국민들이 사회적 논란에 참여할때부터 이들의 동기는 절대로 문제 그 자체에 대한 것이 아니다. 그저 자신의 편안함이 방해받고 있다는 데에 불만이 있는 것이다. 더우기 문제인 것은 이런 잘못된 보수적 국민들의 태도가 대다수 국민들에게 배신감을 불러일으킬 정도의 큰 잘못이라 할지라도 그런 결과가 자신들의 현실적인 삶에는 사실상 아무런 어려움이나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에 너무나도 가볍게, 너무나도 아무렇지 않은듯이 반복된다는 데 심각성이 있다. 그리고 어떤 문제이건 이들은 항상 '우리의 평화와 안정을 위협하는 모든 것은 나쁘다'는 식의 동기와 핵심쟁점 이외에는 관심도 없고 시각도 고정되어 있으므로 사회적 화제에 관해 대화가 통하지 않는 특징도 줄곧 보이고 있다.
우리 사회는 완벽하지 않다. 솔직히 말해 고치고 넘어가야만 할 부분이 너무도 많다. 물론 이것을 모두 한꺼번에 고칠 수도 없는 것이고 사회체제를 바꾸거나 전복 시킨다고 해서 이것이 자동으로 고쳐지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국민이 가만히 있으면 정부가 알아서 다 해주는 것도 분명히 아니며 그런 것을 기대하고 살면 안되는 것이 현대사회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수적 국민들은 꾸준히 존재하는데, 이것은 아마도 자연의 섭리가 아닐까 추측 할 수 있을뿐이다.
나는, 문제를 바로잡고 그 바로 잡은 것을 지키려는 '보수'가 진정한 보수라고 본다. 그저 안정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보수가 아니라 '수구'다. 그저 하던 것, 쓰던 것, 보던 것이 익숙하고 익숙하면 문제없고 좋은 것이라는 생각에 매몰 된 사람들. 익숙하기만 하면, 익숙해서 편하기만 하면 익숙한 그것만은 비판적 사고의 대상에서 아예 제외시켜 놓고 이야기 하는 사람들. 그리고는 그 익숙한 것을 수정하려 하면 대상의 잘잘못을 떠나서 그저 익숙하기 때문에 지키려고만 하는 '수구'는 결코 '보수'가 아닌 것이다.
사태는 본질을 이해하고 본질로부터 해결해야 한다. 여기에 기여 할 수 있는 정부와 국민이 많은 사회가 건전하고 발전된 사회다. 당신이 무엇으로 불리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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